순간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꼼수를 부리는 것보다 정도를 가면 언젠가는 빛을 보게 된다는 말은 식상하다. 그런데 비즈니스 룰 엔진 업체인 이노룰스 김길곤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런 말이 빈말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이노룰스는 국내 비즈니스 룰 엔진 시장에서 외산 업체들의 제품을 물리치고 1위에 오른 업체다.
김길곤 대표는 “고객 프로젝트에 최선을 다해 임했더니 그 고객분이 다른 고객들을 소개시켜주셨고, 또 이직을 하셨다가도 관련 프로젝트가 진행되면 동등하게 경쟁할 수 있는 기회도 주셨습니다. 눈 앞의 이익에 연연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정도를 지켰더니 고객들이 도와주셨습니다”라고 밝혔다.
비즈니스 룰 엔진은 업무 로직을 소스에 직접 넣어 개발하면서 발생했던 유지보수 문제와 복잡성을 제거해 업무 로직을 아예 별도로 빼서 이것만 수정하면 애플리케이션에 바로 반영될 수 있도록 하면서 기업 시장에서 주목을 받았다. 특히 다양한 상품이 신속하게 출시되고 사라지는 금융권 분야에서 많이 적용돼 있고 최근 제조업 공정 분야로도 확산되고 있다.
김길곤 대표는 “엑셀은 기업 사용자라면 누구나 다뤄본 적이 있을 겁니다. 현업 사용자들도 많이 다루고 또 잘 다루고 있습니다. 업무 요건이 바뀌면 엑설처럼 한 줄 넣으면 바로 반영이 될 수 있는 것이 비즈니스 룰 엔진입니다. 업무 인수 인계를 받으면서 습득해 나갈 수도 있습니다”라고 설명했다.
비즈니스 룰 엔진은 전문가들의 지적 노하우가 들어가 있는 시스템이라고 보면 된다. 의사들이 환자를 진료할 때 그동안 쌓여 있던 데이터들과 매칭을 해서 의사가 미쳐 생각하지 못한 것도 찾아낼 수 있는 방식과 유사하다. 오류를 최소화할 수 있지만 문제는 모든 지식을 엔진에 꾸준히 업데이트 시키기가 만만치 않은 분야다. 성능이 떨어지면 바로 시스템 운영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꾸준한 엔진 성능 개선은 필수다.
그는 포스데이터에 입사 후 근무를 하다가 현대전자, 현대정보기술을 거쳐 93년에 창업을 결심했다. 그 창업 결심이 재밌다. 을로 생활하다가 갑으로 한번 생활해 보고 싶어서였다고 하면서 웃었다. 단순한 동기였지만 도전은 쉽지 않았다. 이미 시장에서는 IBM이나 CA를 비롯한 외산 업체들이 포진해 있었다.
99년 창업해 3년 동안 시스템 개발만 매달렸다. 그는 “초기에는 전문가들의 지식이 녹아 있는 엔진을 만들었습니다. 제품만 만들면 바로 팔릴 줄 알았으니까요”라면서 “막상 제품을 만들어 놓고 보니 고객이 없었습니다. 보기 좋게 접었죠. 그런데 저희 엔진을 본 삼성화재의 한 고객이 이런 저런 아이디어를 주면서 그 분야에 집중해 보면 어떻겠냐고 조언을 해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비즈니스 룰 엔진 시장으로 들어오게 된 이유입니다”라고 설명했다.
초기 사업을 전개했던 10년 전에는 엔진으로 룰 엔진이 나온 게 아니라 데이터베이스에 변화되는 정보들을 입력해서 프로젝트들을 진행했다. 데이터 드리븐 방식이었다. 그런데 업무 로직을 DB에 넣어 사용하다가도 새로운 요건이 나오면 DB를 손봐야 했다. 엔진으로 이런 부분만 빼놓고 DB와 연동할 수 있도록 하면 어떨까 하는 제안이었다.
보험료 산정은 상당히 복잡하다. 상위룰을 만족시키면서도 작은 수많은 룰들과 연동해 바로 반영이 돼야 한다. 하나의 룰이 또 다른 룰을 호출해야 하는 상황이다. 초기 개발하려던 전문가 엔진을 버리고 3개월 정도 다시 응용해서 프로토타입을 만들었다. 고객을 찾아 1년 이상 쫓아다녔다.
아이디어는 삼성화재 고객이 제안해 주었지만 첫 고객은 교육 분야에서 유명한 대교였다. SAP ERP를 구축하는 프로젝트 중에서 학습지 교사들에게 수당과 수수료를 주는 분야의 로직이 복잡했다. 이 때 외산 벤더들과 경쟁해 처음으로 고객을 확보하게 됐다. 2~3일 안에 바로 적용을 하니 고객들도 놀랐다.
그는 “상당히 힘겨운 시간이었는데 좋은 고객을 만나게 되었던 거죠”라고 담담히 말했다.
이노룰스는 금융권 비즈니스 룰 엔진 시장에서 확실한 기반을 다지고 있다. 외한은행 방카슈랑스 프로젝트 중 보험 분야의 보험료 계산에 적용됐다. 서서히 시장에 이름이 알려졌지만 외산 업체들의 영업력은 견고했다. 하지만 경쟁사들이 진행했던 프로젝트가 만족할만한 성과를 내지 못하면서 조금씩 기회가 왔다.
미래생명 차세대 시스템을 구축할 때는 기존에 이미 고객으로 있었던 주택금융공사의 고객이 미래생명 차세대 프로젝트 팀들에게 어떻게 비즈니스 룰 엔진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어떤 성과를 얻었는지 장시간 직접 브리핑까지 해줬다.
그는 “한 고객이 저희것을 써보고 정말 괜찮다고 다른 고객에게 전파해주셨습니다. 초기 3년간 개발에만 매달려서 외부 영업도 생각하지 못했었는데 당시에 저희는 제발 밖에 나가서 일 좀 해보자는 게 소원이었어요. 고객이 생기면 정말 신나게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런 모습을 고객들이 정말 잘 봐주신 거죠”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특히 외산 업체들의 경우 고객의 요구 사항으로 수정을 하려고 해도 본사에 다시 보내서 반영을 해줘야 하는데 국내 고객들의 요구를 발빠르게 대처해주지도 못했다. 작은 국산 업체였지만 연구소에서 바로 바로 대응해서 바로 고객에게 다가서니 고객들도 하나둘 믿고 일을 주기 시작했다.
뜻하지 않은 어려움도 있었다. 모 화재 차세대 시스템 구축 당시 가장 중요한 상품 팩토리를 만드는 일을 맡게 되었다. 상품 팩토리는 보험 상품의 마스터 데이터 관리(MDM)이라 상당히 중요한 분야다. 4개월간 프로젝트에 투입됐다가 경쟁사가 저가에 다시 제안한 것이 받아들여져 그냥 나왔다. 고객 마음이 변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인건비만 받고 나왔다. 하지만 그 프로젝트가 제대로 성공하지 못했다는 소리를 들었다. 아쉬움도 컸다. 상품 팩토리 분야는 처음이어서 제대로만 성공하면 다른 고객들을 확보하는 것도 수월했었기 때문이다. 고객과 소송이라도 가고 싶었지만 속으로 삯혔다.
그런데 다른 곳에서 연락이 왔다. 동일한 상품 팩토리 프로젝트였다. 모 생명 회사에서 기회를 줬고 성공적으로 구축했다. 더 재미난 일은 이 고객이 자사의 상품을 경쟁사에 통째로 판매하면서 새로운 수익을 올린 것. 보통 경쟁사에는 그런 제안을 안하는데 새로운 수익 사업으로 자사의 프로젝트 성과물을 제공한 것. 이 덕분에 국산 소프트웨어를 잘 사용하지 않은 외산 생명회사에 제품을 공급하게 됐다. 이후 소문을 듣고 다른 생명, 보험, 화재 업체들이 줄줄이 프로젝트를 맡겼다.
운도 따랐다. 투입되어 있던 프로젝트가 지지부진했는데 이전 고객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프로젝트 매니저가 관련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된 것. 그 PM은 관련 구축 경험도 있어 이노룰스가 해야될 업무를 명확히 지적해주고 고객들의 과도한 요청을 오히려 정리해줬다. 그 덕분이었는지 프로젝트도 해당 고객이 원하는 시점에 마무리를 지을 수 있었다.
김길곤 대표는 이 대목에서도 "정말 인복이 넘쳤다고 생각했습니다. 엔지니어들은 서로가 속이고 하는 걸 싫어합니다. 열심히 했더니 그걸 고객분들이 알아준 것이고 그 분들이 오히려 프로젝트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교통정리를 해주셨습니다. 정말 그런 고객들 덕분에 여기까지 오고 있는 것이죠"라고 거듭 고객들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아무리 인터뷰라지만 고객 자랑이 장난이 아니었다. 비공식적으로는 어려움도 토로하는데 김길곤 대표는 그런 말을 한차례도 하지 않았다. 고객 덕에 여기까지 왔다는 말이 빈말이 아니었다.
그는 고객과 함께 연구소에 있는 인력들에 대한 고마움도 표했다. 연구소장이 자기 생각에 완벽하지 않으면 절대 제품을 내놓지 않는 성격이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회사를 떠나지 않고 함께 했던 연구원들이 그런 뜻을 잘 따라주다보니 제품이 지속적으로 향상되었고 결과적으로 고객들에게도 신뢰를 얻었다는 설명이다.
금융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지만 차세대 프로젝트들이 끝나면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하다. 어떤 복안이 있는지 물었다.
이노룰스는 최근 제조업체들에 주목하고 있다. 또 대형 ERP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다양한 산업군에서도 기회가 있다는 입장이다. 대교 프로젝트에서 경험했듯이 ERP 제품이 모두 수용할 수 없는 분야가 있고 그 분야에서 새로운 기회가 생기고 있고 이미 시장에서 검증된 브랜드 인지도가 있어 기회가 오고 있다는 설명이다. 상품이 많은 통신 분야도 좋은 고객이라는 설명도 잊지 않았다.
일본 시장에서의 성과도 빼놓지 않았다. 그런데 일본 시장은 참 우연한 기회에 성과가 난 곳이다. 일본의 경우에도 메인프레임에서 다운사이징을 하려는 고객들이 많은데 직접 진출은 엄두도 못내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재일교포가 연락이 오고 일본에서 이노룰스의 제품을 팔고 싶다는 입장을 보내왔다. 하도 열심히 접촉을 해서 만나보고 제품과 메뉴얼들을 보냈는데 오릭스 신탁은행에 제품을 공급했다는 소리도 오고 그 파트너가 1카피를 구매해서 연간 유지보수료도 바로 입금해 줬다. 일본 파트너들은 자신이 제품을 공급해도 비용을 지불하고 유지보수료를 바로 입금해준다는 걸 처음 알았다.
메뉴얼도 아주 상세히 만들어서 가져올 정도로 제품에 대해서 상당한 이해 수준이었다. 일본은 매뉴얼의 나라라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할 정도였다. 포스코 광양 야드 자동화 당시 일본 메뉴얼을 보고 작업한 경험이 있던 김길곤 대표로서는 오랫만에 과거를 회상하게 된 시간이었다고.
파트너는 일본 고객들에게 메뉴얼을 주었고 고객들은 그 메뉴얼대로 제품을 설치, 프로젝트를 진행해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고. 신기한 경험을 했고 일본의 주요 IT 매체가 방한해 취재를 올 정도였다. 이 때도 이노룰스의 제품을 사용하던 고객이 방문 취재를 흔쾌히 허락해주었고 그 성과들을 열심히 알려주었다. 고객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전했더니 그 고객의 말이 더 걸작이다.
"그렇게 큰 미디어에 얼굴도 나고 우리 회사 소개도 나가는데 우리가 더 좋지 뭐."
기본에 충실한 회사. 이노룰스 김길곤 대표를 인터뷰하고 나오면서 꼼수 부리지 말고 열심히 생활해야겠다고 다시 한번 다짐했다. 그런데 그게 쉽지가 않다. 그래도 노력하고 또 노력하는 수밖에 달리 방법은 없어 보인다.
일본에서도 고객이 고객을 소개해주는 상황이 연출되길 기도해보면서 이노룰스 사무실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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